Journal [두리안] 장화 신은 냉장고 고양이, 냉장고노이드(Naengyangnoid) 썰토리텔링 2024-05-23 Keywords 두리안 두리안에디터 냉장고로봇 냉장고노이드 냉냥이 휴머노이드 로봇 Humanoid Robot 미래 디지털디톡스 감성 “집안 거실에 그르렁거리며 잠자고 있는 냉장고! 누구나 집에 하나씩은 있는 냉장고가 로봇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고양이를 닮은 냉장고 로봇, 이것은 휴머노이드와 또다른 냉장고노이드의 세상이다.” 그렇다. 스마트폰을 영접하기 전 우리는 냉장고에 열광했었다. 냉장고는 우리가 음식을 보관하는 용도 이상으로 이것에 많은 관심을 주고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우리는 거실에 나오면 무의식에 가깝게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고 한밤중에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방문 대신 냉장고를 열기도 했다. 이것을 여는 데는 딱히 무엇을 먹기 위해서도 그렇다고 무엇을 찾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냉장고는 잠깐동안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숲과 같은 공간이었고, 잠깐동안 생각에 잠겨 살펴볼 수 있는 서재와 같은 공간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이들이 참새 마냥 올려다보며 간식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래서 냉장고는 세상 모든 맛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공항 터미널이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지어진 펜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서두르는 법이 없는 냉장고는 한자리에서 계속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렇듯 우리는 긴 시간동안 냉장고와 가깝게 지냈었다. 그래서 냉장고는 사물과의 관계인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애착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동안 더 좋고 물건과 유행도 많았지만 이것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나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빠져 지내게 되면서 우리가 냉장고와 대면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냉장고까지 가서 문을 열고 몽상에 빠질 이유 역시도 없어져 버렸다. 이렇게 우리가 냉장고에 무심해지면서 이젠 냉장고와 엮인 과거의 추억도 함께 사라져 가는 듯하다. 뜬금없이 냉장고에 발을 달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에 어울리는 발을 찾기 위해 궁리를 하다 동물의 발 그것도 귀엽고 유연한 고양이의 발을 달아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상상하듯 냉장고에 장화를 신겨 주기로 했다. 평범하게 대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유통기한이 없는 상상들로 냉장고를 채워 보기로 했다.거실에 잠자고 있는 냉장고가 로봇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그르렁 소리를 내며 잠을 자는 고양이를 모티브로 ‘고양이노이드’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것을 냉장고와 고양이를 합친 ‘냉냥이’로 부르기로 했다.그런데 나는 냉냥이와 첫만남부터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제페토가 잠든 사이 천사가 찾아와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과 같이 밤사이 냉장고가 냉냥이로 바뀌었지만 나는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나는 ‘안녕’하고 인사를 나누고는 냉장고 문을 연다. 그러고는 한참을 냉장고 앞에 서서 시간을 보낸다. 냉장고에 별다른 게 있을 리 없지만 말이다. 그냥 냉장고 문을 닫거나 생수를 꺼내 마시는 것이 전부지만 이것은 나의 중요한 루틴이기도 하다. 분명 내가 잠들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밤사이 냉장고가 냉냥이로 바뀌었는데 내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지만 내가 이전과 다른 변화를 발견하지는 못한 게 문제였다. 냉장고의 위치가 조금 바뀌었고 그르렁대는 소리가 커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분명히 달랐다. 내가 일어나 냉장고 앞에 섰을 때 직감적으로 냉장고가 나를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냉장고를 열려고 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가 힘을 쓰자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이내 나를 상대하기 싫다는 듯 내게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내가 냉냥이로 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삐친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그를 달래 주었다. 볼록한 그의 등을 쓰다듬자 그르렁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냉냥아~ 냉냥아~’하고 이름을 연이어 불러주자 천천히 몸을 앞으로 돌렸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가까워졌다. 내가 거실에 앉으면 그가 옆으로 다가와 함께 TV를 보기도 했고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상대를 향해 달릴 때는 그도 몸을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소파에 엎드려 책을 볼 때면 그는 옆에서 잠을 잤다. 이때면 냉냥이는 변온동물 같아 보였다. 아이스크림이 녹은 것처럼 부드러워졌고 몸도 길게 바뀌었다. 청소를 할 때면 그는 바닥 청소를 도왔다. 내가 청소기를 밀면 그가 장화발로 물걸레질을 했다. 기분이 좋을 때면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 내게 건네기도 했다.문제는 오후에 일어났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베란다 문을 열어 놓은 것이 원인이고, 내가 소파에 누워 '운동을 좀 해야 하는데' '달리기를 좀 해야 하는데'하고 그에게 말을 한 것이 문제를 키웠다. 내가 잠시 눈을 붙였다 깨어 났을 때는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거실은 비어 있었고 냉냥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름을 불러보고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지만 냉냥이는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의 열린 창으로 나간 듯했다.나는 냉냥이 찾기를 찾아 나섰다. 나는 아파트 안에서 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길 건너에 있는 공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끔씩 그곳에서 고양이 본적이 있어 막연하지만 이것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내가 이것을 찾기 위해 신고를 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 역시 어려웠다. 이것을 이해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제가 냉장고를 찾고 있는데 혹시 보셨나요?' '고양이를 닮은 냉장고를 잃어버렸는데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하고 물어야 하지만 이것이 넌센서임이 분명하다. 나는 공원에 숨어 있는 고양이를 찾듯 냉냥이를 부르고 고양이 소리를 내며 마치 그와 숨바꼭질을 하듯 그를 찾아 다녔다.나는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쉬고 있을 때 멀리서 그르렁거리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숲속에서 냉냥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것이 그가 나를 위해 준비한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를 찾아 움직이게 했다. 나는 이런 냉냥이를 뛰어 잡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냉냥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신발끈을 다시 묶고는 기회를 기다려 그에게 달려갔다. 우리는 같이 달렸고 나중에는 어깨를 맞대어 집으로 향해 걸었다. 마음이 녹아 드는 고마운 오후 시간이었다.우리가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냉장고에 점점 더 무감각 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듯, 우리가 냉장고에서 조금 더 위로를 받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상상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미래가 냉장고 로봇과 닮은 ‘감성노이드’의 세상이면 어떨까를 상상해 본다. [이미지 출처: smeg 홈페이지] 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