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이화동(Ihwa-dong), 찾아가게 되는 것들의 비밀 Culture 2024-05-04 Keywords 이화동 성지 낙산프로젝트 도시재생 벽화 벽화마을 문화도시 게이츠헤드 Gateshead 안토니곰리 AntonyGormley 나오시마 고양이 이상화 이상화에디터 평범한 산동네였던 이화동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06년 문화관광부가 추진한 ‘낙산 프로젝트’에 의해서다. 도심의 낙후된 지역을 미술의 힘을 빌어 재생시키기 위해 추진했던 프로젝트가 이화동을 한때 벽화마을의 타이틀을 가지게 했다. 그러면서 카페와 샵도 늘어났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곳이지만 2010년 인기를 끌던 벽화가 사라지면서 인기도 함께 시들어 버렸다. 언덕 위에 집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서 있는 이화동은 1970년대 산업화의 성지로 동대문 시장에 의류를 공급하는 작은 봉제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한양 도성의 일부가 마을에 인접해 있어 재개발이 무산되고 도시재생사업을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진행하면서 불만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화동은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듯하다.도시재생과 함께 인구소멸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소가 있다. 문화도시로 변신에 성공한 게이츠헤드와 나오시마가 그곳이다.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한 게이츠헤드(Gateshead)는 과거 철강, 석탄, 조선업으로 번성하며 영국 산업을 주도하던 곳이었지만 1970년대부터 중공업이 무너지면서 쇠퇴의 일로를 걷게 된다. 하지만 1990년 문화투자를 통해 문화관광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철제 조각상 ‘북방의 천사’를 시작으로 세계 최초의 기울어지는 인도교인 ‘밀레니엄 브리지’, 버려진 제분 공장을 리모델링한 ‘발틱 현대미술관’, 건축가 노먼 포스트(Norman Foster)가 디자인한 콘서트홀 ‘더 글라스 하우스’를 통해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에서 연간 100만명이 찾는 예술 도시로 변신에 성공한다.게이츠헤드를 알릴 랜드마크로 앤서니 곰리는 마을의 역사와 미래를 바라보는 의미를 담은 ‘북방의 천사’를 구상한다 [출처: innaolshansky.com(메인 이미지), gateshead.gov.uk] 일본 나오시마(Naoshima) 역시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인구 감소로 신음하던 암울한 섬이었다. 구리 제련소로 산림이 파괴되고 쓰레기로 방치된 섬을 바꿔 놓은 것은 1987년 시작된 ‘나오시마 프로젝트’였다. 베네세홀딩스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의 노력으로 호텔에 미술관이 더한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1992년)을 시작으로 현대미술 거장들의 설치미술, 지중 미술관(2004년), 이우환 미술관(2010년), 밸리 갤러리(2022년)가 차례로 들어서면서 인구 4000명의 작은 섬이 세계인들이 찾는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마을의 빈집과 공터를 전시장으로 바꾸면서 관람객들을 마을 곳곳에 숨은 장소를 걷고 즐기게 했다.나오시마 프로젝트는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의 ‘예술적 가치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철학을 바탕으로 구상되었다 [출처: benesse-artsite.jp]그런데 이곳에는 도시재생과 문화관광을 대하는 공통의 원칙과 노력이 있었다. 그들은 문화의 시작과 대상을 주민을 위한 서비스에 맞추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것은 주민공동체를 찾아다니며 목소리를 듣고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수렴하고 반영한 결과였다. 이것의 운영도 특별했다. 발틱 미술관은 영구 컬렉션에 비용을 들이는 대신 자신들이 세계 미술의 흐름을 리딩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이들은 뉴캐슬의 젊은 작가들을 양성하고 지역 젊은 세대가 누릴 수 있는 문화 혜택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관련 사업에 지역 주민을 적극 고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도슨트 역할을 하고 거리를 가꾸고 있다. 도시재생에 필요한 원동력을 그곳에서 찾고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나의 이화동 여행은 동대문 역사공원역에서 시작했다. DDP를 지나 대로변에 들어선 장터를 구경하고 성곽길을 걸어 이화동에 도착했다. 이화동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듯 조용했고 그래서인지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난 뒤의 모습 같기도 했다. 짝을 이루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나는 짧게 이화동을 둘러보고는 카페로 들어가 의미 있는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우연이지만 최근 여러 벽화마을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우후죽순 들어선 벽화마을에서 불편함과 씁쓸함을 더 많이 느끼고 돌아온 것 같다. 벽화마을은 마치 관광지에서 파는 기념품과 같이 똑같은 디자인에 장소만 바꿔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벽화마을의 인기가 사라지면서 모두가 이젠 게이츠헤드와 나오시마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마을버스의 종점이 있는 이화동은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 책 읽는 고양이 카페의 벽면에는 고양이 공예품을 나라별로 모아 놓았다. 예쁘고 특별했지만 우리의 고양이 공예품이 보이지 않으면서 이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우리나라에 고양이가 적거나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린 이것을 다양한 예술품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영국에는 색연필로 그린 듯한 고양이가 있고, 러시아에는 마트로시카 모양을 하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 중국에는 푸른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 고양이가 있고, 일본에는 팔을 귀엽게 들고 있는 마네키네코 인형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독일 고양이에 관심이 갔다. 생물인 고양이를 기하학적으로 묘사한 것도 재미있고 세라믹, 철재, 패브릭같이 여러 재료를 함께 사용한 것도 좋았다. 이렇게 고양이 하나에도 각각의 다름이 존재하듯 우리의 것에도 이런 다양성과 특별함이 더해지면 좋을 것 같다.이렇듯 우리가 느끼는 혼돈과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젠 우리의 고양이를 찾는 노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나의 색, 우리의 소재, 모두의 모양을 우리가 찾았으면 한다. 서울에는 해치고양상과 야옹타워가, 제주와 영월에는 돌하르양과 고양김삿갓과 같이 말이다. 그러면서 벽화마을로 불렸던 이화동이 종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꿈꿔 본다.에디터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