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두리안] 여행자를 위한 집에 대해 상상하다 썰토리텔링 2026-08-29 Keywords 두리안 썰토리텔링 여행자 집 관광버스 여유 휴식 설렘 여행의기술 새로운풍경 다른시선 상상력 쇼룸 현관 여행준비 기억 서랍 기록 풍경 창 복도 특별한 공간 공항 터미널 여행전설렘 긴장 색다른감정 이른 아침, 회사로 향하던 길에 관광버스에 크게 적힌 ‘여행 가고 싶다’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이상하게도 여유와 휴식, 설렘 같은 이미지가 따라 붙는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떠나는 여행을 떠올려 보면 조금 다르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움직이고,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 사진을 찍으며 바쁘게 하루를 보내곤 한다. 여행을 떠났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더 분주한 경우도 많다.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우리가 왜 여행을 떠나는지를 말한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지금의 권태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낯선 곳에 도착해도 마음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사진 찍기에 바빠, 기대와 다른 모습이 조금만 나타나도 쉽게 실망한다. 어쩌면 여행에서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느냐’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골목도 천천히 바라보면 새로운 풍경이 되고,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가게 하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도 한다. 결국 여행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면서, 동시에 익숙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그렇다면 여행자에게 필요한 집은 어떤 모습일까. 잠시 머무르기 위한 공간일 수도 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준비된 집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집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현관 앞에는 종류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다양한 여행 가방이 줄지어 놓여 있고, 지붕 위에는 여행지의 풍경을 밤새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전망대가 있을지도 모른다. 창문은 평범한 네모가 아니라 망원경처럼 생겼을 수도 있으며, 미로 같은 골목으로 통하는 비밀 문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여행자를 위한 집을 상상해본다.여행을 준비하는 쇼룸 같은 현관이 집의 현관은 커다란 쇼룸을 닮았다. 여행에 필요한 의류와 신발, 가방이 목적에 맞게 잘 정돈되어 있다. 작은 파우치부터 오래 걷기 좋은 신발, 비 오는 날 유용한 우비와 모자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다. 언제든 필요한 것을 챙겨 떠날 수 있고, 계획한 여행이 있다면 여기서 직접 준비할 수도 있다. 현관은 여행의 출발지이자 모험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머릿속 상상을 실제로 펼치고 짐을 싸며, 여행의 분위기에 점점 가까워진다. 간단한 외출조차 특별한 여행처럼 느껴지고, 어제와 다른 길로 나서며 새로운 발견을 찾게 된다. 이 집에서는 막연했던 여행 계획이 더욱 구체화되어 더 먼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기억을 쌓는 서랍서랍으로 가득한 집을 상상해본다. 이 집에는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물건들이 모여 있다. 작은 가방, 낡은 신발, 지도와 노트, 예쁜 엽서, 비행기와 버스 티켓, 여행지에서 받은 영수증,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와 작은 돌멩이까지 다양하다. 여행이 끝날 때마다 비었던 서랍이 하나씩 채워진다. 시간이 지나 이 서랍을 열면, 그날의 공기, 냄새, 날씨, 길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우리는 사진에 익숙하지만, 여행은 사진만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손에 닿는 촉감, 낯선 음식의 맛, 길에서 들었던 소리와 그곳의 냄새까지, 이 집의 작은 물건들은 오감으로 경험한 여행을 불러오는 매개다. 여행지에서 구입한 작은 노트도 이곳에 함께 놓여 있다. 여행 중 몇 줄밖에 적지 못했던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그때의 기억을 덧붙인다. 이곳의 서랍들이 채워지면, 모인 모든 물건들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는 소중한 작품으로 완성된다. 풍경을 바꾸는 창집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창일 것이다. 하지만 고정된 창을 통해 한정된 풍경만 바라보는 것은 아쉽다. 이 집에서는 창의 위치를 바꿀 수 있어서 바깥 풍경도 달라진다. 창이 향하는 곳이 오래된 골목일 수도, 나무 한 그루일 수도, 드넓은 하늘일 수도 있다. 그렇게 바라보는 풍경은 골목 카페가 되고, 나무 아래 작은 정원이 되며, 밤이면 달과 새가 나타난다. 특별한 꾸밈 없이도 시선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창은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 여행지에 놓인 이 집은 계절마다 다른 이유로 방문객들을 초대한다. 미술관처럼 벽에 그림 대신 바뀌는 창이 여행지와 일상을 작품처럼 담아낸다. 창을 통해 펼쳐질 풍경을 상상하는 것은 이 집의 큰 즐거움이다.여행의 기분을 담은 복도길게 뻗은 복도 역시 여행자에게 특별한 공간이다. 공항이나 터미널을 연상시키는 이 긴 복도는 여행을 앞둔 묘한 설렘과 긴장이 머무는 장소다. 비행기나 배 탑승을 앞둔 그 시간은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감정을 선사한다. 떠난다는 실감과 아직 목적지에 닿지 않은 상태가 공존한다. 이 집 복도는 어둡고 창문 없는 긴 길로 이어져 천천히 걸으면 저 멀리 빛이 보인다. 그 빛은 문을 열면 밝은 정원이거나 전혀 다른 낯선 공간일 수도 있다. 집 안이면서도 마치 또 다른 장소에 닿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복도를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벌써 시작된 셈이다.이처럼 여행자를 위한 집은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설렘과 기억, 감각이 풍부하게 스며든 공간이다. 오늘도 하나의 새로운 여행처럼, 다양한 집들을 떠올려 본다. [이미지 출처: House in Benahavís / Fran Silvestre Arquitectos]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