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dkb Archive 05] 꿈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꾼다 Opinion 2026-07-22 Keywords dkbArchive 꿈 오늘 어제의반복 과거의기억 떠오름 감각의현재침투 오래된기억 세상끝집 외가집 신기한풍경 잠겨있던꿈 어린시절 반고흐의집 사라지지않는꿈 형태변화 건축 현재연결 나를다시만나는과정 후진해야닿는길 시간의흐름 형태변화 이상화에디터 어쩌면 오늘은 어제의 반복일지도 모른다왜 과거의 기억들은 예고 없이 불쑥불쑥 떠오를까. 의식적으로 떠올리려 해도 좀처럼 생각나지 않던 기억이 어느 날 문득 아무렇지 않은 순간, 나를 찾아온다. 이미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각들이 갑자기 현재를 비집고 들어와 놀라게 한다. 도시에서 살지만, 가끔 버스를 타다 보면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눈앞에는 화려한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버스가 마치 비포장길 위를 달리는 것처럼 심하게 흔들린다. 그럴 때면 보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손을 뻗어 좌석 손잡이를 꼭 잡기도 한다. 때론 그 모습이 우스워 혼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마치 현실이 잠시 다른 시간으로 뒤집힌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오래전 묻어 두었던 기억 하나가 조용히 떠오른다.세상의 끝에 있던 집내게 외가집은 늘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집으로』의 촬영지보다 더 깊은 산골, 버스 종점 너머 외가집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외가집에 가려면 새벽부터 서둘러 준비해야 했다. 읍내 터미널에서 정오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비포장길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버스 종점에는 안내판도 없었고, 오래된 집 한 채의 작은 매점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서 다시 호두나무가 서 있는 경사진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 외가집에 이르렀다. 기울어진 비탈과 돌이 많은 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인내심을 요구했다. 사람 발길조차 드문 깊은 산속에 집이 있다는 사실은 어린 나에겐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풍경이었다. 지금도 도시 버스가 심하게 흔들릴 때면 나는 그 비포장길을 떠올린다.잠겨 있던 꿈어린 시절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특히 집을 많이 그렸는데,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마당에 나가 그리거나 화단에 앉아, 계단 난간에 걸터앉아 반복해서 같은 집을 그렸다. 그림 속 집은 늘 비슷했지만, 그 반복은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스케치북은 집 그림으로 채워져 갔다. 주변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왜 그렇게 집만 그리느냐며 의아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집을 그리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다.그러던 어느 날, 집을 주제로 한 반 고흐의 그림을 보았다. 그때서야 집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수없이 그린 집들이 틀린 게 아니었다는 안도와 반가움이 밀려왔다. 돌아보면 그 꿈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좋아했던 것들은 없어지는 대신 다른 형태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뜻밖의 순간, 오래 잠겨 있던 문이 열리듯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후진해야 보이는 것들내가 글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전공이 아닌 건축 이야기라 더 놀랐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 가득 집을 그리던 모습이 다른 형태로 현재를 잇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발견은 멀리 있지 않다. 결국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 속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이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나를 다시 만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길은 후진해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다. 즉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흐르며 형태만 바꿀 뿐이다.에디터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