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두리안] ‘의식’으로 존재하는 건축 썰토리텔링 2025-12-16 Keywords 두리안 두리안에디터 썰토리텔링 의식으로존재하는건축 ST듀퐁 라이터 순간의품격 깊은울림 찰나의멈춤 엄숙한의례 라이프스타일오브제 내밀한품격 시간의결 섬세한공명 손의촉감 귀의미세한감각 집중과사유 완급조절 교감 세월의흔적 성찰의장 프랑스 라이터 회사 S.T. 듀퐁(S.T. Dupont)은 1872년 시몽 티소 듀퐁(Simon Tissot-Dupont)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처음부터 라이터를 만들던 회사는 아니었다. 유럽 왕족과 귀족을 위한 맞춤 여행 가방에서 출발한 이 브랜드는 ‘이동하는 삶의 품격’을 고민하던 공방이었다. 그 철학은 점차 작은 소품으로 옮겨왔고, 결국 손 안의 오브제인 라이터로 응축되었다. 그렇게 S.T. 듀퐁은 불을 만드는 회사를 넘어, 불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순간의 품격을 설계하는 장인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듀퐁 라이터의 가장 깊은 울림은 뚜껑을 열 때 터져 나오는 맑고 경쾌한 금속성 메아리에서 시작된다. 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금속의 두께, 힌지의 각도, 스프링의 장력까지,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산되어 빚어진 장인정신의 정수가 그 안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불을 켜기 전 찰나의 '멈춤'을 선사하는 이 소리는, 즉각적인 소비를 유예시킨다. 라이터를 열고, 그 울림을 귀 기울여 듣고, 온전히 음미한 후에야 비로소 불꽃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단순한 도구를 하나의 엄숙한 의례로 승화시킨다. 프랑스 파요-앙-뿌아투 공방에서 금속 가공, 옻칠, 조립에 이르는 수십 단계의 섬세한 수작업을 거쳐 태어나는 듀퐁 라이터. 클래식한 비례의 라인 1부터 듀퐁 소리의 완성형이라 불리는 라인 2까지, 시대에 따라 형태는 변화할지언정 '불을 켜는 순간의 품격'이라는 중심 철학은 흔들림 없이 굳건히 지켜진다. 듀퐁 라이터는 흡연 여부와 관계없이 소유의 상징이자 수집의 대상, 삶의 품격을 더하는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로 견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이러한 S.T. 듀퐁 라이터의 맑은 울림을 건축에 빌려온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집이 우리 하루를 온전히 즐겁게 만드는 감각의 오브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과장된 외관으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듀퐁 라이터처럼 조용히 다가가 어루만져야 비로소 내밀한 품격이 만개하는 그런 집. 외벽은 차가운 콘크리트 대신, 시간의 결을 따라 깊어지는 금속과 유리의 미묘한 광택으로 단장되어, 햇빛의 춤에 섬세하게 공명하며 시시각각 새로운 표정을 수놓을 것이다.이 집은 시각보다 먼저 손의 촉감과 귀의 미세한 감각을 깨운다. 현관문을 열 때면 아주 짧고 맑은 금속음이 울려 퍼지고, 그러면 마치 라이터 뚜껑을 여는 순간처럼, 그 울림과 함께 집이 품은 고요 속으로 깊이 스며들게 된다. 이 소리는 단순히 도착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외부의 소란을 내려놓고 집 안의 평온한 리듬 속으로 들어오라는 사려 깊은 전환의 속삭임이다. 이렇게 설계된 집에서 불은 더 이상 뜨거움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시의 대상이 아닌, 통제된 상태로 숨 쉬는 불은 따뜻함을 넘어 집중과 사유를 위한 깊이 있는 요소가 된다.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벽난로는 벽 속에 얇게 숨겨져 있고, 조명은 직접적인 빛 대신 반사와 은은한 잔광으로 공간을 채우며, 아늑하고 고요한 성찰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이 집의 내부는 가장 빠른 동선을 자랑하지 않는다. 또한, 최대한의 효율성을 쫓지도 않는다. 대신 모든 공간에는 의도적인 한 박자가 고요히 숨어 있다. 손잡이를 잡고 한 번 더 힘을 주면 잠깐 멈춘 뒤에야 비로소 열리는 서랍처럼, 집은 삶의 속도에 섬세한 완급을 조율하는 하나의 장치로 자리한다. 이 집은 편리함보다 깊은 교감을 이야기하며, 유행을 따르기보다 오래도록 함께하기 위해 태어난 공간으로 거듭난다. 손때가 닳아갈수록 건축은 비로소 생명의 숨결을 얻고,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마침내 완성되는 집. 바로 그 안에 이 공간의 진정한 매력이 깊이를 더한다.듀퐁의 철학이 깃든 집은, 잠을 청하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방식을 섬세한 리듬으로 설계하는,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마치 듀퐁 라이터를 여닫는 고요한 의식처럼, 집에 들어서고 나서는 행위 그 자체가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하나의 소중한 '의식'이 되는 집을 상상해 본다. 우리가 상상해야 할 미래의 주거는, 단순히 더 많은 기능을 담는 집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태도를 깊이 묻는 집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