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두리안] 마녀의 건축, 꿈과 현실 사이의 여정 썰토리텔링 2025-11-23 Keywords 두리안 두리안에디터 썰토리텔링 건축 집짓기 마녀의건축 책의의미 부 특권 정보독점 희소성 지식과권한 인쇄술의탄생 정보독점의벽 정보의자유 검증되지않은정보 정보르네상스 마녀사냥 정보의이중성 정보과잉 왜곡된정보 뜬소문 시행착오반복 미야자키하야오 마녀배달부키키 객관성 열린자세 끈질긴모색 과거 책의 의미를 잠시 그려본다. 당시 책은 부유한 개인이나 특정 기관만이 소유하고 생산할 수 있었던 귀한 존재였다. 중세 유럽에서 책이라는 존재는 막강한 권력과 부를 지닌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고, 지식의 흐름을 엄격하게 독점하는 도구였다. 11세기 엑서터 대성당 도서관에 단 5권의 책만이, 그리고 15세기 케임브리지 대학교 도서관에도 총 122권만이 소장되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그 희소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지식과 권한은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일반인에게 모든 지식은 봉인된 성역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평범한 이들의 일상과 사유, 감정마저도 정보의 벽 안에 갇혔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인쇄술의 탄생은 견고했던 정보 독점의 벽에 깊은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1454년부터 1500년까지 불과 46년간 유럽 전역에 1,200만 부가 넘는 책이 쏟아져 나왔으니, 이는 이전의 모든 필사본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그 파급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빠르고 저렴하게 텍스트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비로소 '정보의 자유'라는 새 시대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인쇄술이 가져온 변화는 긍정적 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학 혁명의 거대한 불씨를 당기는 촉매였던 동시에,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며 사회에 깊은 혼란을 드리우기도 했다. 정보 르네상스의 화려한 서막을 열어 지식의 빗장을 풀어주었으나, 마녀사냥 같은 짙은 공포를 증폭시키는 얄궂은 모순을 품게 된 것이다.정보가 지닌 이러한 이중성은 놀랍게도 '건축'이라는 고유한 영역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집은 더 이상 본능적인 보금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 공간은 개인의 고유한 개성과 섬세한 취향, 삶을 향한 깊은 열망이 오롯이 깃들어 새로운 형태로 발현되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날 건축과 집 짓기라는 꿈을 향한 여정에는 역설적으로 '정보 독점'의 낡은 그림자와 '정보 과잉'이라는 현대적 혼란이 기묘하게 뒤섞여 공존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전문 지식과의 메울 수 없는 간극에 직면하게 되고, 나아가 정보의 부재나 왜곡된 정보 속에서 길을 잃는 어려움까지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다.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마치 중세인처럼 건축이라는 끝없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옆집은 이렇게 했다더라', '누구는 이렇게 실패했다더라' 같은, 확증 없는 뜬소문에 갈급하게 매달리며 문제는 더욱 깊어지고 시행착오는 고스란히 반복되는 형국이다. 정보가 극도로 부족했던 중세 시대의 막연한 어려움이 현대에 재현되고 있는 참으로 역설적인 현실이다. 진실과 지혜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던 인쇄술 초기의 오류가 지금도 시대만 달리하여 반복되는 셈이다. 마치 '건축에 대한 마녀사냥'의 그림자가 여전히 우리 주변을 서성이는 듯하다.이러한 질문과 혼란 속에서 문득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열세 살이 되던 만월의 어느 밤, 키키는 고양이 지지와 집을 떠나 마녀로서 홀로 서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낯선 항구 마을에 불시착한 그녀는 배달이라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과도한 시선과 기대에 짓눌려 능숙했던 마법조차 점차 힘을 잃어간다. 급기야 빗자루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고양이 지지와도 소통하지 못하게 되면서 절망의 순간들을 겪는다. 그러나 키키가 잃었던 마법은 딱딱한 학교 교본이나 정형화된 공식 속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북돋아 주는 화가 우르술라와의 깊은 교감 속에서, 그리고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려는 순수하고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다시 빗자루에 몸을 실었을 때, 비로소 그녀는 다시 비상할 수 있었다. 이렇듯 키키의 비상은, 정보 과잉과 오류가 빚어낸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상실감에 잠긴 우리 시대 건축에 명징한 해답을 건네는 듯하다. 우리 역시 내면의 순수한 의지와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 속에서 잃어버린 마법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휩쓸리기 쉬운 감정적 동요를 경계하고, 정보의 출처와 의도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러한 끈질긴 모색의 여정 속에서, 기존의 틀을 과감히 허물고 개성과 고유한 빛깔을 뿜어내는 건축이 비로소 탄생한다. 어쩌면 이 모든 창조의 과정은 우리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마법을 깨우는 것, 나아가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위대한 모험일지 모른다. [이미지 출처: Light of the Earth / Ma Yansong]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