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꺼삐 리포트] 컨셉과 취향, 무엇이 다른가? 최근 '컨셉과 취향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컨셉에 이어 이 두 개념에 대해 탐구하며, 브랜드나 디자인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종종 혼동되기도 하는 이들의 간극을 모색하고자 한다. 컨셉이 특정 목적과 메시지를 담아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전략적 틀'이라면, 취향은 개인이나 집단이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감각의 포인트'이다. 취향은 삶의 방식에 반영되며 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건축에서 또한 개성이 중요해지면서, 건축 디자인에서 취향은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Keywords 뚜꺼삐리포트 컨셉 Concept 취향 내적울림 소통하는몸짓 무라카미하루키일화 순수한열망 감각의포인트 내면의무늬 감각의언어 끌림의힘 경험의깊이 취향소비 다이소 컨셉과취향의시너지 나다움 무인양품컨셉 구찌마케팅재창조 건축의취향 알랭드보통 두얼굴건축 퍼즐타워 크랄러호프호텔 나의일부 삶을담는그릇 새로운가치 컨셉과 취향, 그 미묘한 차이 취향과 컨셉은 닮은 듯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취향이 조용한 내적 울림이라면, 컨셉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몸짓에 해당한다. 이러한 '내적 울림'인 취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재능, 집중력, 지구력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지극히 우연한 계기로 소설가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 계기는 1978년, 그가 도쿄 메이지진구구장 잔디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관전하던 중 찾아왔다. 1회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선두 타자 데이브 힐튼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투수 야스다를 상대로 안타를 치고 2루를 밟던 바로 그 순간, 그에게 불현듯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이 스쳤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막상 글을 쓰려 하자, 제대로 된 만년필 한 자루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곧바로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으로 향했고, 원고용지와 만년필을 구입했다. 이후 작품을 쓰고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했으며, 마침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그는 "나는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거나 요구를 받아 소설가가 된 것이 아니라, 느낀 바가 있어 내 멋대로 소설가가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군가 권한다고 해서 러너가 되지 않는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될 만해서 러너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말처럼, 취향은 외부의 강요나 목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내면에서 '내 멋대로' 솟아나는 순수한 열망의 발현이며, 이는 점차 자라나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이러한 취향의 '자발적 체화'는 언어 표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be familiar with'와 'be used to'는 모두 '익숙해진 상태'를 나타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be familiar with'는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낯설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어떤 개념이나 컨셉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아는 것에 가깝다. 반면, 'be used to'는 반복된 경험으로 몸에 배어 자연스러워진 상태를 뜻한다. 이는 자발적으로 형성되어 몸에 익고,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취향'과 유사하다. 즉,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 멋대로' 소설가가 된 것처럼, 취향 역시 우리의 삶에 '내 멋대로' 스며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취향, 내면의 무늬 아침마다 어떤 커피를 고르고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등, 우리의 하루는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중요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취향'이 반영된다. 취향은 특정 대상이나 활동을 선호하거나 강하게 끌리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미적 판단, 사회적 제약, 경제적 선택 등 다양한 맥락에서 발현되며,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개인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고유한 방법이다. 취향은 마치 시간과 경험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나이테처럼, 우리의 내면에 새겨진 무늬와도 같다. 그래서 취향은 논리보다는 감각의 언어로, 단순한 선택보다는 강렬한 끌림의 힘으로 작동한다. 이는 스스로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강력한 언어이다.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라고 말했다. 사전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을 뜻하는 취향은 결국 한 인간의 고유한 양식이자 삶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는 곧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된다. 취향은 단순한 관심과 호감에서 시작하여, 배우고 즐기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그 깊이를 더한다. 우리는 상대를 그의 취향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나와 닮은 취향을 만나면 통한다는 기쁨을 느끼고, 나와 다른 취향을 마주할 때는 새로움을 경험한다. 상대의 옷차림부터 좋아하는 음악까지, 그의 취향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그 사람의 모습으로 남는다. 그래서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취향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취향, 삶을 물들이는 선택 오늘날의 소비 경향을 우리는 '취향 소비'라 부른다. 소비자들은 자신만의 개성과 독특함을 드러낼 수 있는 제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브랜드들은 소비자가 직접 취향대로 꾸미고 조합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거나, 맞춤 제작 서비스를 활발히 제공한다. 취향 소비는 소비자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제안되고, 소비자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 취향은 더욱 넓고 깊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취향이 단순히 거창한 영역뿐 아니라, 가장 실용적이고 필수적인 일상에서도 발현된다는 것이다.취향은 마음의 쏠림을 따르면서도, 때로는 가격 대비 가치 등 실용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다면적인 특성은 한 사람 안에서도 하루에 몇 번씩 '동경 소비', '사랑 소비', '필요 소비'와 같은 다양한 소비 형태가 교차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간편하게 해결하고 저녁은 한우 오마카세로 자신을 극진히 대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목적에 따른 소비뿐 아니라, 다이소처럼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으로 실용성과 간결함을 중시하는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키며, 단순히 '가성비'를 넘어 일상 속 작은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듯 취향은 삶 곳곳에서 미묘하게, 그리고 때로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취향과 컨셉의 시너지 브랜드가 아무리 훌륭한 '컨셉'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적으로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취향 없는 컨셉은 공허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이렇듯 '취향'과 '컨셉'은 서로를 완성하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한 이야기로 채워준다. 둘이 결합하면 단순한 '좋아함'을 넘어, 삶의 방식을 형성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러한 취향과 컨셉의 조화는 브랜드, 디자인, 예술,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잘 맞는 브랜드의 컨셉에 강하게 이끌려, 이를 '나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브랜딩의 영역에서 취향과 컨셉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를 자극하고 이끌어주며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브랜드의 성공은 이 섬세한 관계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미니멀리즘 가구의 정제된 디자인에 사용자의 세심한 취향이 더해질 때, 단순한 집기 하나가 일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는다. 패션에서는 개개인의 취향과 브랜드의 컨셉이 만나 '스타일'이라는 독창적인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취향이 결합된 컨셉은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며, 공감과 연결의 장을 열어주기도 한다. 무인양품(MUJI)은 '이름 없는 좋은 제품(無印良品)'이라는 철학 아래, 과도한 장식을 배제한 미니멀리즘, 실용성, 재료 본연의 가치라는 명확한 컨셉을 일관되게 고수한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합리적이고 간결한 생활 방식'이라는 명확한 철학을 제시한다. 이러한 의도된 컨셉은 간결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나아가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새로운 소비자층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면 구찌(Gucci)는 밀레니얼과 Z세대를 핵심 타겟으로 삼아 이들의 독특한 미감과 가치관을 반영한 파격적이고 개성 강한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브랜드를 재창조했다. 100년 가까이 된 하이엔드 브랜드가 고유의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취향을 깊이 이해하고 과감히 새로운 컨셉을 제시함으로써, 명품 소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취향의 건축, 나와 우리를 담는 공간 건축에서 '취향'은 단순한 장식적 기호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감각적인 매개체이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행복의 건축>에는 하나의 건축물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거리로 향하는 건물 앞면은 절제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정원으로 통하는 뒷면은 아내의 취향을 담은 낭만적 고딕 양식으로 꾸며졌다. 이는 건축이 서로 다른 욕망과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이러한 '취향의 건축'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일례로, 세계 건축 페스티벌 2025 미래 프로젝트 부문에 선정된 알바니아의 '퍼즐 타워(Puzzle Tirana)'는 사용자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모듈식 구조를 선보였다. 굽이치는 독특한 형태로 디자인된 이 건물은 호숫가에 자리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각 거주자가 자신만의 유닛을 독립적으로 설계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커뮤니티인 '수직 마을'을 형성하도록 하여 현대 도시 생활에서 개인의 취향을 충족시킨다. 하디 테헤라니 건축사무소가 설계한 '크랄러호프 호텔(Hotel Krallerhof)'은 건축이 오감과 감성까지 아우르는 '경험적 공간'으로 진화한 사례이다. 이곳은 사용자 개개인의 내면적 취향과 완벽하게 공명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공간마다 다른 질감의 재료를 사용하여 촉각적 다양성을 제공하고, 자연광의 유입을 조절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경험을 선사하며, 세심한 음향 설계를 통해 공간별로 다른 소리의 울림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에게 특별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건축이 '나에게 맞는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나'의 일부가 되는 공간을 느끼게 한다.건축은 더 이상 고정된 형태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거주하는 이의 삶을 담는 그릇이자, 그들의 가장 깊은 취향이 드러나는 개성의 층위와도 같다. 가족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취향, 도시와 건축주의 관계, 시대와 개인의 욕망이 모여 한 건축의 방향을 결정한다. 앞면과 뒷면이 다른 얼굴을 가졌듯이, 하나의 건축물이 여러 정체성을 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건축이 우리 자신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를 표현하는 취향은 앞으로도 건축 디자인의 중요한 지향점이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WE ARE ONA] 에디터 스티브 &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