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건축가: 건축가 박길룡(1898~1943) 건축가 박길룡(朴吉龍, 1898~1943)은 건축가 이훈우와 함께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1920년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공대 전신) 건축과 1회 졸업생으로 현대식 건축 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 건축 기수(技手)가 되어 조선총독부 청사(1926년)와 경성제국대학 본관(1931년) 신축 공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주택과 사무소를 설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1932년 ‘박길룡 건축사무소’를 개업해 화신백화점(1937), 보화각(1938)을 비롯해 다수의 근대식 건축을 설계했고, 조선의 재래주택 개선과 온돌 개량에 앞장서는 등 사회 계몽 활동에 노력했다. 그는 주택 작업에 대한 기록과 함께 다양한 글을 언론에 집필하였고 최초의 건축 잡지인 ‘조선건축’을 창간하는 등 건축사에 소중한 유산을 남겼다. 1. 김연수 주택(1929년) 2. 화신백화점(1937년) 3. 민병옥가옥(1930년대) 4. 김덕현주택(박노수미술관, 1938년) 5. 보화각(간송미술관, 1938년) Keywords 건축 아카이브 Architectural Archive 건축가박길룡 한국1세대건축가 한국근대건축 모더니즘 김연수주택 화신백화점 민병옥가옥 김덕현주택 박노수미술관 보화각 간송미술관 이문당 모더니즘을 추구한 건축가 박길룡건축가 박길룡(朴吉龍, 1898~1943)은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1920년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공대 전신) 건축과를 이기인과 함께 졸업했다. 1회 졸업생인 그는 현대식 건축 교육을 받은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20년 조선총독부 건축 기수(技手)가 되어 조선총독부 청사(1926년)와 경성제국대학 본관(구 서울대학교 본관, 1931년) 신축에 실무로 참여했으며 이 시기 조선인이 의뢰한 주택과 사무소를 설계하면서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가 설계한 것으로 김연수주택(1929년), 조선생명보험 사옥(1930년), 김명진주택(1931년), 동아백화점(1931년), 동일은행 남대문지점(1931년)이 있다. 그는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의 디자인과 선이 굵고 무게가 느껴지는 조형을 선보였다. 관청에서 쌓은 실무를 기초로 기능 분할, 수평 강조, 비대칭적 평면구조와 합리적인 공간의 모더니즘을 추구했다.성북동 김연수주택(1929년)은 건축가 박길룡의 설계로 지어진 초기 한국 근대건축이다. 서양식 외관에 한옥의 중정 배치를 적용한 절충형으로 디자인했으며 옥상 테라스에는 퍼걸러(식물로 지붕을 덮어 햇볕을 가려주는 조경 시설)를 설치했다. (대한건축사협회)박길룡 건축사무소를 설립하다건축가 박길룡은 1932년 최고기술자인 기사로 승진한 뒤 조선총독부를 퇴직해 종로구 관훈동에 ‘박길룡 건축사무소’를 설립했다. 그 동안 쌓아온 건축설계 경험에 더해 조선인이 형성한 자본으로 상가와 사무소 건축이 활발해지면서 그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전성기 때는 8명의 직원이 근무했고 사무소는 건축가들이 모여 현안을 토론하고 화합을 다지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 그가 설계한 건축물은 한청빌딩(1935년), 구영숙소아과의원(1936년), 화신백화점(1937년), 경성여자상업고등학교(1937년), 민병옥가옥(1930년대), 김덕현주택(박노수미술관, 1938년), 보화각(간송미술관, 1938년), 전용순주택(1939년), 평양대동공업전문학교(김일성 대학, 1940년), 혜화전문학교(1943년), 이문당(1943년) 등이 있다.화신백화점으로 이름을 날리다화신백화점은 건축가 박길룡의 대표 건축이다. 백화점은 1937년 종로 사거리에 서양 고전주의 양식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축은 1층은 화강석으로 마감하고 5층까지 쭉 뻗은 기둥에 가늘고 긴 창문을 배치했다. 간결한 아치와 처마로 상단을 마무리하면서 높고 당당한 외관 이미지를 구현했다. 화신백화점은 당시 최대 규모로 지어지면서 최신식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갖추고 대식당, 그랜드 홀, 스포츠 시설 그리고 옥상에는 정원과 전망대를 배치했다. 당시 경성 인구의 80 퍼센트가 화신백화점을 구경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화신백화점과 건축가 박길룡의 인기는 대단했다.안타깝게도 건축가 박길룡의 대표작인 화신백화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이지만 역사적 유물로 지정되지 못하면서 화신백화점은 1988년에 서울시의 종로 도로 확장 계획에 헐리고 말았다. (위키백과)근대 건축의 개념이 도입된 최초의 개량한옥경운동 민병옥(閔丙玉)가옥은 근대적 건축 개념이 도입된 한국 최초의 개량한옥으로 이 역시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했다. 서양 건축의 영향을 받아 현관, 화장실, 욕실이 집안에 있다. 앞마당으로 들어가면 중심에 부엌, 대청, 건넌방, 사랑방이 있고 부엌 앞 뒤쪽으로 안방과 뒷방이 위치한다. 안방과 사랑방을 H모양으로 놓아 동선을 연결시켰고 이렇게 연결된 긴 복도는 유리창을 배치했다.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김덕현주택(박노수미술관)은 절충식 주택 역시 서양식 외관을 하고 있다. 1층 벽돌조에 2층 목조의 건축에 아치 모양의 포치(Porch, 지붕이 돌출된 건물의 출입구)를 배치하고 응접실에 벽난로와 샹들리에를 가져와 프랑스 스타일로 꾸몄다. 그리고 안방과 거실에 4쪽 여닫이 문을 연결시킴으로써 전통 건축의 개방적인 공간 구성을 구현했다.경운동 민병옥가옥은 현재 서울시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관, 화장실, 욕실을 내부에 두고 긴 복도에 유리창을 단 것이 이 시기 개량한옥의 특징이다. (문화재청)김덕현주택은 박노수 화백이 구입해 현재는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외부에는 다채로운 식물을 심고 정원 곳곳에 정원석을 놓아 꾸미면서 현관바닥, 벽타일, 벽체 등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그가 지향한 건축의 목표, 모더니즘보화각(葆華閣)은 간송미술관의 중심 건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1934년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물들을 지키고 보존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성북구에 대지를 마련하고 1938년 보화각은 건축가 박길룡의 설계로 모더니즘 양식으로 지어졌다. 보화각은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전면을 반원형의 돌출 구조로 디자인해 비대칭의 동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건축은 최고급 자재로 심플하고 우아하게 지어졌으며 내부 공간은 수집된 유물을 진열하고 전시하기에 적합한 기능적인 디자인을 적용했다. 간송미술관은 1년 7개월의 보수·복원 공사를 마치고 2024년 새롭게 문을 열면서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에 건축가 박길룡이 1938년에 그린 청사진 도면을 처음 공개했다. 그의 대표작인 화신백화점이 당시 유행하던 서양 고전주의 양식에 바탕을 두었다면, 보화각은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로 그가 지향하는 건축의 목표를 보여준다. (간송미술관)다양한 글을 집필하다건축가 박길룡은 종로를 중심으로 여러 근대식 건물들을 설계하고 세움으로써 한국인 건축가로서 자긍심을 높여 주었다. 그는 건축 설계 외에도 건축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잡지를 창간하는 등 근대 건축사에 선구적인 업적과 기반을 만들었다 평가받는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주택독본’, ‘주방에 대하여’ ‘조선 5개 재래주택 연구’, ‘도시의 갈 곳’, ‘유행성 문화주택’ 등 건축에 대한 다양한 글을 집필했다. 1937년에는 ‘재래식 주택 개선’이라는 책을 자비로 출판하고, 1941년에는 최초의 월간 건축 잡지인 ‘건축조선’을 창간했다. 그는 외래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절충식 구조를 제안했다.이문당 사옥을 마지막으로건축가 박길룡은 여러 작품에서 그가 좋아하는 미국의 근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진보적인 디자인과 모더니즘을 추구했다. 그는 안국동 출판사 이문당(以文堂) 사옥(1943년)을 마지막으로 1943년 4월 사망할 때까지 건축 설계 그리고 건축 이론가와 지도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38년에는 조선건축회의 한국인 이사가 되었고, 1941년에는 조선건축기사협회의 유일한 한국인 회원으로 이사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건축가 박길룡은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중에 뇌일혈로 쓰러지면서 깨어나지 못했다. 당시 그의 나이 45세였다. 그의 분신과 다름없는 ‘박길룡 건축사무소’는 1945년까지 운영되었다.[참고 자료]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아카이브경성의 건축가들 (김소연, 루아크, 2017)한국의 건축가_박길룡 (윤인석, 건축사 8월호, 1996)에디터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