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시장 골목엔 계절이 있다 Travel 2024-08-29 Keywords 강혜빈 강혜빈에디터 전통시장 경동시장 약령시장 재래시장 청량리 제기동 스타벅스경동1960 청과물시장 한방카페 동대문시 24절기의 길목은 일찌감치 가을로 들어섰는데, 한낮의 날씨는 아직 여름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아침, 저녁 공기가 제법 부드러운 요즘이다. 더운 날씨 탓에 발걸음이 뜸했다가 다시 찾는 곳이 있다. 청량리역 1번 출구에서 제기동역까지 이어지는 재래시장이다. 주로 주말 점심에 방문하곤 했는데 어느 날 시장의 아침 풍경이 궁금했다. 오전 9시쯤 청량리 청과물 시장 골목은 아직 한산했지만, 하루를 일찍 여는 상인들의 움직임으로 활기가 넘쳤다. 물류 박스를 한가득 싣고 지나가는 지게차와 드문드문 보이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시장 골목을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과일 가게 상인은 당일 아침에 들어온 방울토마토를 진열대에 한 아름 쏟았다. 불그스름한 여름의 빛깔을 가득 담은 자두와 복숭아를 보니 청과물 시장의 골목은 한창 여름이다.대형마트에 야채 코너가 있다면, 재래시장엔 야채 골목이 있다. 청량리 시장에서 경동시장 신관 방향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채소류를 판매하는 야채 골목이 나온다. 넓은 중앙 통로를 사이에 두고 버섯류, 콩나물, 쌈채소 등 소품목을 전문으로 다루는 가게가 다양하다. 처음엔 그저 발걸음 닿는 대로 필요한 것을 구입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시장 골목을 탐험하다 보면 자주 찾게 되는 상점과 장보기 품목이 생긴다. 종이상자 귀퉁이에 투박하게 쓴 ‘새벽에 따온 상추’가 매력적인 쌈 채소 가게, 파스타와 샐러드에 원 없이 넣어 먹을 바질과 루꼴라를 푸짐하게 담아주는 곳 등 나만 아는 채소 가게 지도가 생긴다. 상호 없이 가판대만 두고 파는 곳은 근처 매장을 지도에 표시해 두고 찾아간다. 수백 개의 점포 가운데 단골 가게가 하나둘 생기면 장보기 노하우도 조금씩 쌓이는 기분이 든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식재료를 구입했으니 건강한 식단을 고민하는 습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장을 보다 쉬어 갈 곳을 찾는다면 ‘스타벅스 경동 1960’을 추천한다. 60년대 오랜 폐극장을 개조하여 카페 공간으로 조성한 곳인데, 옛날 영화관의 모습이 조금씩 녹아 있어 정겹다. 영화 스크린이 있던 곳엔 카운터가 있고, 층별로 조성된 카페 좌석은 영화 관람석을 떠올리게 한다. 카페 공간 벽면에 비치는 주문 번호와 닉네임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자막 같기도 하다. 카페 좌석의 형태도 다양한데,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좌석 사이에 설치된 옛 극장의 흑백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다. 영화관에서 카페로 변한 공간 안에서 나도 모르는 옛 극장의 모습을 자꾸 상상하게 된다.오래된 공간을 개조하여 새로움을 주는 곳이 있다면, 기존의 공간을 겸비한 채 인식의 변화를 시도하는 곳도 있다. 경동시장 옆 약령시장에 위치한 ‘다미가’다. 2016년경, 경동시장 한약재 골목에서 최초로 오픈한 한방 카페다. 한의사인 남편과 바리스타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30년간 한의원으로 운영하던 공간의 일부를 카페로 조성했다. 다방 외에 찻집이 없던 때라 한약재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젊은 층의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여러 시도 끝에 고안한 것은 한의학 요법으로 특허받은 6가지 체질차였다. 체질차는 한약재를 넣고 달인 베이스에 갖가지 원료를 넣고 3분 정도 우린 후 먹는 침출차의 형태다. 한약재가 들어갔다고 텁텁하고 쓴맛을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붉은빛의 상큼한 맛의 오미자부터 은은한 갈색빛의 고소한 누룽지까지 한약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맛과 색은 다양하다. 더운 여름엔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실 수도 있지만 따뜻하게 조금씩 따라 마시는 것을 택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게 느긋해져도 괜찮으니까.계절이 바뀌면 주변 풍경들도 모습을 바꾸듯, 시장은 그렇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골목마다 펼쳐지는 계절은 제철 식자재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변화를 선택한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유행처럼 떠올랐다가 금세 잊히는 문화 속에서 공간에 묻어난 변화의 흔적은 아름답다. 며칠 전 날씨 예보에서는 시원한 공기가 드나들 통로가 열렸다고 하니 가을도 그리 먼 계절은 아닌 것 같다. 계절이 바뀌는 지금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맞이하고 싶다면 시장 골목에 들어서 보는 건 어떨까. 시장 어느 골목에선 나도 모르는 사이 작은 변화를 사부작사부작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스타벅스 경동1960점주소: 서울 동대문구 고산자로36길 3운영: 09:00 ~ 21:30 (월~목) 09:00 ~ 22:00 (금~일) 다미가주소 : 서울 동대문구 약령중앙로 5 대산빌딩 1층운영: 10:00 ~ 18:00 17:30 라스트 오더에디터 강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