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두리안] ‘배꼽’이 금쪽 같은 비례(황금비례)로 불리는 이유 썰토리텔링 2024-05-01 Keywords 두리안 두리안에디터 배꼽 황금비례 비례 루브르박물관 승리의여신 사모트라케의니케 비트루비안맨 VitruvianMan 레오나르도다빈치 세상 어느 것 하나 사사로운 것이 있을까? 아니 세상에서 의미가 없은 것이 있을까?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흔적을 찾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가끔은 그 흔적이 사라질 때가 있다. 마치 컴퍼스를 사용해 원을 그리고 나면 이것의 중심인 오목한 배꼽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당연하게 존재하던 것들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약 아침에 동그란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구의 멸망 아니면 우주 대폭발의 공포를 느끼며 출근도 하지 못하고 집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평소에는 들여다보지도 않던 배꼽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면 또 어떨까? 우리는 눈을 땅에 붙이고 어디에 떨어졌는지 모를 배꼽을 찾느라 집안을 탐험할 것이다. 병원에 가야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혼란스럽다. 배꼽이 붙은 곳을 생각해 외과로 가는 사람, 태어날 때 생긴 것이니 산부인과로 문의하는 사람, 성형외과나 피부과로 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우리의 배꼽을 훔쳤다가 범인이 잡혀도 문제다. 그가 훔친 수많은 배꼽 중 과연 내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남의 배꼽을 가져와 아무렇게나 달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배꼽을 셀카든 증명 사진으로든 한장 찍어 놓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 같다. 평상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사라지면 우리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중심에서 조금만 위치가 바뀌어도 우리는 태양을 잃거나 배꼽이 빠진 것처럼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늘 중심에 있지만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배꼽처럼 말이다. 그리고 배꼽을 중심에 놓으면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 생태학자라면 배꼽을 시작점에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사진 작가라면 인물 사진을 배꼽에 놓고 찍을 수가 있을 것이다. 로봇 개발자라면 휴먼노이드의 정의를 배꼽에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가가 되어 배꼽을 미학적 관점에서 들여다봐도 재미가 더해진다. 입시미술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성지 같은 곳들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수많은 석고 데생을 그리며 보아온 것들의 진품을 본다는 것은 유명 연예인을 직접 만나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그리고 머리 부분만 잘려져 보던 것에서 풀샷으로 이것을 대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의 무수한 상상과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파인애플을 마트의 진열대에서만 보다 나무에 달린 것을 보면 놀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파리로 여행을 가면 빠뜨리지 않고 찾는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이렇게 루브르에 입장하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조각 작품이 승리의 여신이라 불리는 ‘사모트라케의 니케’이다.나는 웅장한 건축물 안 그것도 높은 계단 위에 놓여 있는 이 조각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머리와 팔이 없는 조각상에 내가 반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온전하지 못한 조각상이기에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건축물과 조각상이 조화를 이루면서 기가 막힌 장관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의 소실점인 중심은 배꼽이었다. 이것의 중심을 배꼽에 두지 않았다면 조각상 앞에 놓인 다뤼 계단은 산처럼 높고 멀게 느껴졌을 것이고 조각상 역시 아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넋 놓고 바라보며 절정을 향해가는 마술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조각 작품에 대해 우리의 상상력이 더해지는 듯하고 승리의 여신의 미소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것에 대한 감동 때문인지 전시실에서 마주한 석고 데생의 오리지날과 온전한 조각상이 오히려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것은 분명 배꼽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루브르의 다뤼 계단(Escalier daru) 위에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놓여 있다. 공간에 생동감이 더해져 감탄이 터져 나오게 한다. [출처: tosti.it(메인 이미지), louvre 홈페이지] 배꼽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인체 비례일 것이다.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의 황금비율이다. 인체에 대한 비례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다빈치가 이것의 절대미를 찾아 수치화 했다. 신장과 머리, 팔과 가슴을 비례와 길이로 구분하던 것을 배꼽을 중심에 두고 원과 정사각형 위에 인체를 올려 놓았다. 그래서 배꼽에다 컴퍼스를 놓고 원을 그리면 손과 발이 뻗는 넓이가 된다. 다빈치가 컴퍼스를 배꼽에 대고 돌려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또 배꼽이 얼마나 찌릿찌릿 했을까 상상해 본다. 오쇼 나즈니쉬의 에세이 ‘배꼽’을 보면 누구에게는 인체에서 가장 필요 없는 부분이 배꼽이고 또 누구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배꼽이다. 누워서 감자를 먹을 때 소금을 올려 놓기 위해 배꼽이 꼭 필요하듯 다빈치에게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곳 역시 컴퍼스를 올려 놓는 배꼽이었다.‘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배꼽을 중심에 두고 원과 정사각형 위에 인체를 올려 놓았다. [출처: leonardodavinci 홈페이지]과일을 달고 있는 꼭지에도 배꼽 같은 오목한 홈이 있고 꽃꼭지가 떨어진 자리에도 같은 흔적이 남는다. 식물도 동물에도 배꼽이 있듯 우리가 만드는 물건에도 배꼽이 필요할 것 같다. 전화기에는 꼭지와 닮은 손잡이가 있었다. 그리고 손잡이는 전화기에 꼭 필요한 것으로 중요한 디자인 요소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전화기에 있던 손잡이도 꼭지가 떨어지듯 사라져 버렸고 다양하던 디자인도 무덤덤하고 심심해진 것 같다. 이렇게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곳에 배꼽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상징, 존재, 개성이 담긴 배꼽이면 좋을 것 같다. 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