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엑스포(Expo)가 예술을 리딩하다 건축 디자인 2024-04-10 Keywords 엑스포 박람회 파리엑스포 엑스포건축 Expo ParisExpo 그랑팔레 GrandPalais 프티팔레 PetitPlais 오르세미술관 Musée d'Orsay 빅토르라루 VictorLaloux 이상화 이상화에디터 엑스포의 시작과 함께 개최국들은 랜드마크 건축을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장시켰다. 그리고 20세기를 여는 1900년 다섯 번째 파리엑스포가 열리며 엑스포의 명당이 된 샹드마르스에는 유려한 건축물이 차례로 들어섰다. 그러면서 엑스포의 규모도 오르세역, 앵발리드 광장, 센강을 포괄하는 120만㎡로 확장됐다. 1900년 파리엑스포는 진보와 혁신의 기술과 더불어 파리가 예술의 수도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기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 양식이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누렸고 전시장과 주변을 장식했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로댕 같은 당대 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미술 전시회를 엑스포에 포함시켰다. 파리엑스포를 위해 그랑 팔레와 쁘티 발레 미술관이 지어졌다. 그랑 팔레는 회화, 조각, 예술 전시를 선보였고, 쁘띠 팔레는 고대 미술의 발견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했다. 파리엑스포를 계기로 미술계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유럽에서 가장 큰 유리 지붕을 가지고 있는 그랑 팔레의 내부 모습 [출처: https://www.bie-paris.org/] 유럽에서 가장 큰 유리 지붕을 가지고 있는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영국 수정궁에서 영감을 받아 철재과 유리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중앙홀의 면적이 13,500㎡에 이르며 여기에 총 6,000톤의 강철과 200,000톤의 석재가 사용됐다. 주 공간은 고전과 아르누보를 결합한 스타일의 웅장한 계단을 축으로 궁전을 동서로 배치했다. 엑스포와 함께 대규모 전시를 개최하던 그랑 팔레가 2020년 전면 보수 공사에 들어가면서 파리 하계 올림픽 개최에 맞춰 2024년 봄에 재개장 될 예정이다. 내부 복도와 함께 유리 천장의 복원 공사를 거쳐 전시장과 천장 조명의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 프티 팔레(Petit Plais)는 파리시가 보유하던 컬렉션의 일부를 엑스포 기간에 대중들에 소개하면서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시립 미술관으로 전환하게 된다. 아름다운 보자르 양식의 건물 안에서는 고대부터 20세기까지의 작품과 유물을 가지고 있다. 프티 팔레는 그랑 팔레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세잔과 렘브란트를 비롯한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전면 보수 공사를 마치고 재개장을 준비중인 그랑 팔레의 외부 모습 [출처: https://www.bie-paris.org/]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오르세 역(Gare d’Orsay)이었던 건물을 프랑스 정부가 개조하여 19세기 인상주의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유명세를 탔게 된다. 오르세는 시간의 흐름과 요청에 따라 변화를 꾀하면서 한 해 300만명 이상이 찾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1900년 5천만명에 이르는 파리엑스포의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해 엑스포와 가까운 장소에 새로운 기차역을 세우게 되면서 오르세의 혁신이 시작되었다. 과거 오르세궁(Palai’s d’Orsay)이었던 곳에 새로운 기차역을 짓기로 하지만 토지를 양도한 프랑스 정부가 내건 조건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기차역이 철재로 지어지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철재 구조물이 보이지 않게 하고, 세느강에서 역이 보이지 않게 하고, 호텔을 함께 지어야 했다. 하지만 건축가 빅토르 라루(Victor Laloux)가 이 조건을 맞추면서 주변의 우아한 풍광과 어울리는 현대적 건축물로 오르세역이 탄생하게 된다. 루브르와 튈르리 궁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철재 구조물을 석회암으로 감싸 화려한 외관을 가지게 했다. 현대적으로 설계된 오르세역은 프랑스 남부를 잇는 최고의 네트워크와 호텔로 발전하지만, 아쉽게도 1939년에 영업을 중단한다. 짧은 플랫폼의 길이와 전기철도 시스템을 적용할 수 없게 되면서 장거리 운행의 한계에 부딪혔고 호텔이 문을 닫으면서 폐쇄의 위기를 맞게 된다. 철거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프랑스 정부가 보존과 활용책을 검토하게 되면서 변화를 맞는다. 역이 가진 특수성으로 무용지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를 딛고 오르세는 1986년 미술관으로 재탄생한다.유리 지붕과 어닝이 특징인 오르세 미술관의 내부 [출처: https://www.bie-paris.org/]ACT 건축가 그룹이 디자인을 맡아 거대한 홀을 관람객의 동선으로 활용하고, 다른 미술관은 가지고 있지 않은 웅장한 유리 지붕과 어닝(Awning)을 오르세 미술관만의 특징으로 사용하면서 변신에 성공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프랑스 인상주의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2,500점의 전시물을 한곳에 전시하면서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개관 25주년에 맞춰서는 오르세 미술관의 부활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걸고 절반의 전시공간을 폐쇄하고 2년여의 리모델링을 하기도 했다. 이 기간 미술관의 심장인 인상파 전시실을 새롭게 변신시키면서 순회 전시를 통해 1100만 유로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오르세 미술관이 성취한 가장 큰 업적은 건축의 부활이다. 파리엑스포로 탄생한 오르세역이 시대의 변화로 폐쇄되지만 오르세 미술관으로 부활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큰 미술관으로 과거의 위용을 다시 뽐내고 있다. 엑스포는 혁신 쇼케이스이자 건축의 실험장이 되어 왔다. 1851년 런던엑스포의 ‘수정궁’을 시작으로 1889년 파리엑스포에서는 ‘에펠타워’가, 1962년 시애틀엑스포에서는 ‘스페이스 니들’이 그리고 1967년 몬트리올엑스포에서는 '지오데식 돔'이, 2010년 상하이엑스포에서는 '씨앗의 성전'이 인기를 끌었다. 엑스포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 르코르뷔지에,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설계자 야마사키 미노루, 천재 건축가 미래학자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 도시설계의 일인자 단게 겐조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예술성을 갖춘 조형물을 창출했다. 침대가 과학이라면 엑스포는 건축이라 할 수 있겠다.2010년 상하이엑스포에서 6만개의 투명 플라스틱 막대에 식물 종자를 집어넣은 영국의 '씨앗의 성전'의 내부 [출처: https://www.bie-paris.org/] 에디터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