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dkb Archive 14] 결핍을 공간의 개념으로 Opinion 2026-10-05 Keywords dkbArchive 공간개념 여행 집 결핍이만드는채움과공간 새로운공간과풍경 최고의휴식 비움 온전한집 다른차원의여행 특별한세계 좋은공간 부족함 공간을새롭게창조 빈공간 가능성을품은여백 비워둔열린공간 자신의이야기공간 새로운경험과상상 무한한가능성의공간 이상화에디터 여행에서 돌아와 마주하는 집여행은 보통 리프레시를 위해 떠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의 여행은 조금 다르다. 평소 하기 힘든 경험을 한꺼번에 해보려는 마음이 더해지면서, 때로는 여행이 강행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족하다고 느끼던 것들과 관심 있던 것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여행 중 일부러 몰아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온전히 비워 산을 오르거나 트레킹을 하고, 또 다른 날엔 미술관과 전시장을 찾아다닌다. 가고 싶었던 곳들을 하나둘 더하다 보면 하루 동선은 자연스레 길어진다. 깊은 사색을 기대하며 떠난 여행도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려 했지만, 정적인 휴식이 나와 맞지 않았는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사색과 독서, 글쓰기를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여행은 끝났다.그럼에도 이상하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은 늘 좋다. 현관문을 열며 ‘와, 우리 집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좋은 호텔에 묵고 편리한 시설과 맛있는 음식도 누렸음에도. 특별할 것 없는 집, 부족한 점도 많은 집이지만 신발을 벗고 짐을 내려놓은 뒤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이상할 정도로 세상에서 편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시간이 최고의 휴식 같다. ‘왜 여행을 갔다 온 걸까. 여기가 제일 좋은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결핍이 만들어내는 채움과 공간여행은 무언가를 보고 경험하며 채우는 시간이다. 새로운 공간과 풍경,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기억을 쌓는다. 그런데 많은 것을 채우고 돌아온 뒤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어 있는 공간이 더 절실해진다. 집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이 최고의 휴식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또한 우리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고 돌아오면 우리 집이 훨씬 작게 느껴지고, 그 집에 없는 모습들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 결핍이라고 부르는, 내가 아직 갖지 못한 것들이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결핍을 알게 되면 채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빈 방엔 가구를 놓고, 빈 벽엔 그림을 걸며, 빈 공간엔 소품을 둔다. 빈 공간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친구들을 따라서 여름 성경학교에 갔다가 그곳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저녁이 되자 교회 벤치를 마주 보게 놓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다 아이들 중 몇몇은 또 다른 이불로 지붕을 덮어 작은 집처럼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교회 안, 벤치 하나만 있던 그 공간에서 우리는 직접 침대를 만들고 집을 지으며, 또 다른 세계를 새롭게 창조했다. 단순한 벤치가 아이들의 상상과 손길을 통해 온전한 ‘집’이 되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치 다른 차원의 여행 같았다. 평범한 공간이 어떻게 그렇게 특별한 세계로 바뀔 수 있는지, 그 순간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좋은 공간은 많은 것을 가진 공간이 아니다그때 그 공간에는 분명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바로 그 부족함 덕분에 우리가 공간을 능동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미 완성된 침대나 미리 정해진 공간이었다면, 우리는 그저 그 안에 머무르기만 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주체적으로 공간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었다. 이 기억은 빈 공간을 다르게 보게 한다. 빈 공간은 텅 빈 곳이 아니라 가능성을 품은 여백이며, 빈 벽은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장이다. 빈 마당 또한 텅 빈 땅이 아니라 하늘과 바람, 계절이 스며드는 장소이다.공간을 꾸밀 때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하지만 좋은 공간은 많은 것을 가진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비워두었는지가 중요하다. 커다란 빈 벽 하나가 그림 한 점을 더욱 선명하게 살려주고, 적은 가구는 사람의 움직임을 더 자유롭게 만들며, 빈 마당은 계절과 빛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공간 일부가 된다. 여행도 비슷하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다녀오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집과 내가 가진 것들이 다시 보이고, 결핍도 투명해진다. 하지만 모든 결핍을 채울 필요는 없다. 어떤 결핍은 불편으로 남겨두고, 어떤 빈자리는 그대로 보호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올지 미리 결정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서로의 경험과 상상이 더해지는 공간경험과 상상이 어우러질 때 공간은 다시 태어난다. DKB가 바라보는 공간은 이미 완성되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일부러 비워둔 열린 공간이다. 모든 것이 정해져 상상이 닫힌 공간보다, 누군가가 들어와 자신의 이야기를 더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가득 채워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공간보다,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남겨둔 공간이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이 여백은 새로운 경험과 상상이 싹트는 터전이며,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공간은 완성된 정적인 상태가 아닌, 우리 각자의 이야기와 감성이 더해져 비로소 완성된다. DKB가 꿈꾸는 공간은 경험과 상상이 함께 숨 쉬며, 살아 움직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이미지: the Glorya Kaufman Performing Arts Center by AUX Architecture]에디터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