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기억 그리고 기억: 건축의 시간 Opinion 2025-11-13 Keywords 스티브 스티브에디터 기억 건축의시간 시간의밀도 르코르뷔지에 빌라사보아 건축적산책로 렘콜하스 졸페라인탄광 이동의순간 뇌 슬로모션 초고속카메라 감각의확장 의도적인멈춤 롱테이크 슬로모션 시간의리듬 교차편집 평행편집 공존의지혜 미장센 모티프 기억의축적 장소사물의반복과변형 집의새로운시도 비선형서사 열린결말 공간 속 움직임과 감각적 경험이 시간의 밀도를 높인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를 '건축적 산책로(Architectural Promenade)'로 구상하며, 정교한 동선을 따라 거니는 동안 새로운 시야와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지도록 했다. 그는 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연속적인 공간 시퀀스로 전환하여 경험의 밀도를 높였다. 또한,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독일 졸페라인 탄광(Zollverein Coal Mine) 루르박물관의 계단과 통로는 단순히 층과 공간을 잇는 것을 넘어선다. 이곳은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직조하며 '이동의 순간(Moment of Transition)'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 안에서 관람객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고, 나아가 미래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험과 마주한다.이처럼 시간의 밀도와 다채로운 경험 뒤에는 우리가 시간을 인지하고 기억을 축적하는 뇌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자리한다. 어린 시절의 뇌가 노년기의 뇌보다 훨씬 빠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신경세포의 반응 속도가 빠른 어린 시절에는 더 많은 것을 인지한다. 이는 마치 1초에 수천 장을 찍는 초고속 카메라처럼 세상을 '슬로모션'으로 인지한다. 덕분에 어릴 땐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지고, 모든 순간이 생생한 기억으로 저장된다.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뇌 기능이 저하되면서 세월은 빠르게 느껴지고 인생은 짧다고 인식한다. 마치 1초에 한 장의 사진을 찍는 것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건축 또한 이처럼 단순한 기능적 공간을 넘어 우리의 시간을 품고, 기억을 늘려주는 매개체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건축이 우리의 일상을 풍부한 프레임으로 채우고, 찰나의 순간을 영원한 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는 '초고속 카메라'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삶의 프레임 수를 늘리고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건축의 방향일 것이다. 기억을 늘리는 건축에 대해 영화의 언어로 상상해 본다.감각의 확장과 멈춤: 롱 테이크 & 슬로 모션감각의 확장과 의도적인 멈춤으로 건축의 밀도를 높일 수 있다. 마치 영화가 화면 구성과 시간 조절로 관객의 감각을 확장하고 찰나를 극적으로 각인시키는 것과 같다. 영화의 롱 테이크(Long Take)처럼 건축에서는 길게 이어진 시퀀스적인 동선 설계나 점진적으로 공간을 산책로처럼 구성하여 공간 전체를 음미하게 할 수 있다. 슬로 모션(Slow Motion)이 평소 인지하기 어려운 디테일을 선명하게 드러내듯, 건축 내부로 드리워지는 빛의 얇은 그림자, 흐르는 물의 잔잔한 파동, 그리고 특정 질감 위로 미끄러지는 빛의 미세한 변화 등의 순간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섬세한 감각적 경험은 뇌 활동을 활성화하고 찰나를 풍부한 기억으로 전환하며, 바쁜 일상에 '멈춤의 미학'이라는 쉼표를 선물한다.시간의 리듬: 교차 편집 & 평행 편집자연의 변화와 삶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건축에 시간의 리듬을 더할 수 있다. 마치 영화가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여 다층적인 경험을 만들어 내는 교차 편집(Intercutting)과 평행 편집(Parallel Editing)으로 건축에서 시간을 직조할 수 있다. 창과 지붕의 문양을 통해 빛이 비와 구름처럼 시시각각 다른 패턴을 통과해 건축 내부를 스며들게 하는 것으로 교차된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공간마다 재료, 색채, 조망을 다르게 배치하여 다층적인 시공간적 경험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자연 현상과 내부 공간의 변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시간을 감각적이고 리듬감 있게 기억되게 한다.공존의 지혜: 미장센 & 모티프영화가 다층적인 복선을 통해 여러 의미와 시간을 공존시키듯, 건축은 과거와 현재를 한 공간에 공존하게 할 수 있다. 오래된 물리적 흔적을 상징적 미장센(Symbolic Mise-en-scène) 삼아 과거를 소환하고, 보존된 형태나 재료를 모티프(Motif)로 활용해 시간의 층위를 제시할 수 있다. 낡은 산업 유산 위에 새로운 문화적 기억을 쌓는 재생 건축으로 무수한 노동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 이처럼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시간이 한 공간에서 아름다운 대화를 이끌어낼 때, 건축은 무수한 추억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기억의 저장고'로 거듭난다.기억의 축적: 장소/사물의 반복과 변형 건축은 능동적인 상호작용과 유연한 변화를 통해 개인의 기억을 쌓고 확장할 수 있다. 영화의 '장소/사물의 반복과 변형'(Recurring Locations/Objects with Variation)처럼, 건축을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고 변화시킴으로써 특별한 경험과 기억을 선사할 수 있다. 가변형 구조와 모듈형 인테리어는 용도에 따라 유연하게 변모하며 사용자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건축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경험을 넘어 깊은 기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집의 새로운 시도: 비선형 서사 & 열린 결말집은 단순히 잠을 자고 생활하는 공간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감각적 경험을 확장하는 '삶의 도구'이자 '정체성의 거울'로 진화중이다. 영화가 파격적인 형식과 깊은 감정 이입으로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것처럼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와 열린 결말(Open Ending)을 건축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사용자의 주체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며, 깊은 사유와 감정 이입을 가능하게 한다. 건축의 기능성을 넘어 개인의 스토리와 감각적 취향을 담아내는 새로운 컨셉의 시도는 우리의 일상에 깊이를 더하고, 삶의 프레임 수를 늘려 궁극적으로 더 큰 행복감을 선사한다.건축은 기능의 범주를 넘어 살아있는 유기체로 개인의 삶에 의미를 더하고 공동체의 기억을 함께 만들어간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고해상도의 슬로모션으로 확장하고 가치 있는 기억의 시간과 예술로 거듭나야 한다. [이미지 출처: Zollverein Coal Mine] 에디터 스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