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두리안] 디자인과 건축, 여정을 함께 한다는 것 썰토리텔링 2025-10-18 Keywords 두리안 두리안에디터 썰토리텔링 디자인과건축 Design&Architecture 작가와독자의 관계 특별한동반자 오랜여정 나침반같은존재 무라카미하루키 사브 오베라는남자 신뢰와견고한내실 진정성 디자인과건축 삶을담는그릇 공존 믿음직한동반자 지속가능한가치 변치않는가치 아름다움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참 특별하다. 어떤 독자는 한 작가의 작품을 20년이 넘도록 꾸준히 읽는다. 학창 시절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첫 작품이 계기가 되어, 대학 시절에는 밤샘 독서로 그의 세계에 푹 빠져들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특유의 아련하고 감성적인 문체를 통해 청춘의 상실과 고독을 처음 마주한 독자는, 이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기묘한 상상력에 감탄하고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깊은 울림에 빠져든다. 그렇게 작가의 세계관에 애정이 깊어진 독자들은 마침내 <1Q84>와 같은 대작의 출간 소식에 맞춰 서점 앞에 줄을 서는 뜨거운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독자들의 책장에는 청춘의 흔적이 담긴 낡은 문고판과 최근의 신간이 나란히 꽂힌다. 어떤 이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작가가 함께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작가는 독자의 삶 속에서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어 한 세대, 혹은 평생을 함께 걸어가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다.작가가 독자의 삶 속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되듯이, 자동차 브랜드 사브(SAAB)도 한때 그러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사브는 원래 항공기를 제작하던 회사로, 이러한 항공 기술을 접목한 자동차는 곡선미가 돋보이는 차체와 조종석 같은 독특한 계기판, 그리고 무엇보다 안정된 주행 성능으로 다른 자동차 브랜드와는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했다. '날개 달린 자동차'라는 강력한 이미지는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열성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A man called Ove, 2016)'에서도 사브가 지닌 이러한 상징성이 잘 나타난다. 주인공 오베에게 아버지의 사브 92는 최고의 자동차였고, 그 또한 사브 9000을 소유하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부심을 간직했다. 하지만 친구 루네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동차'로 불리던 볼보 144와 세련된 로드스터 BMW Z3를 선택하면서 둘 사이가 멀어졌듯이, 사브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어 갔다. 결국 70년 역사의 사브는 2011년 파산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는 화려한 시작만으로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사례들은 작가나 브랜드가 단순한 인기를 넘어 독자나 대중과 오랜 여정을 함께하는 진정한 동반자로서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어디에 있는지, 즉 어떤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순간의 화려함만으로는 부족하며, 긴 세월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겉모습 이상의 보이지 않는 신뢰와 견고한 내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멋진 모습뿐 아니라, 제품이나 창작물 자체가 진정성과 깊이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처음의 설렘이 꾸준한 매력으로 이어지고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을 함께 기억할 수 있어야 비로소 깊이 있는 동행이 가능해진다.이 이야기는 디자인과 건축에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 건축은 도시의 배경이자 우리의 삶의 터전이며, 디자인은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디자인과 건축 또한 일시적인 화려함만으로는 대중에게서 금세 잊히고 만다. 진정성 있는 건축과 디자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하고, 세대를 넘어 살아남는 힘을 가진다. 이는 건축이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 되어 수많은 이야기를 펼쳐내도록 돕고, 디자인이 매일의 경험에 의미와 편리함을 부여하며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독자의 삶 속에서 세월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듯, 건축도 도시와 사람의 일상 속에서 오랜 시간 흔들림 없이 존재하며 그 의미를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 반대로 급변하는 시장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사라진 사브처럼, 건축과 디자인 역시 지속 가능한 가치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결국, 디자인과 건축은 우리의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함께 성장하며 오래도록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건축과 디자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곁을 묵묵히 지키는 믿음직한 동반자로서 진정성과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아름다움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marymartinbooks] 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