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두리안] 무언극의 건축: 몸짓으로 보여주는 삶과 사용성 썰토리텔링 2025-08-23 Keywords 두리안 두리안에디터 무언극 몸짓언어 건축 슬립노모어 SleepNoMore 삶의 무대 연극의한장면 삶과사용성 존재의깊이 저마다의이야기 여백 사색과상상력 캔버스 몸짓과동선 비움 여백으로이륙된완성 의도된여백과비움 건축은 언제나 말을 아낀다. 아니, 무수한 인간의 요구를 묵묵히 감내한다. 수백 톤의 콘크리트와 돌로 지어진 건물은 침묵 속에 존재하지만, 공간의 의도, 빛의 흐름, 재료의 감촉을 통해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점에서 건축은 무언극(無言劇)과 닮아 있다. 몸짓 언어 중심의 무언극은 언어를 거부하고 오직 몸짓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배우의 시선과 손끝의 떨림이 하나의 문장이 되고, 움직임 사이의 정적이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낸다.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현기증'을 결합한 무언극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기존 공연장의 틀을 깨고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어 관객을 무대에 몰입시킨다. 영국의 극단 ‘펀치드렁크’(Punchdrunk)가 실험적으로 시작한 이 연극은 미국에서 새롭게 상연되며 각광을 받게 되었는데, 뉴욕 맨해튼 첼시의 물류 창고를 개조하여 이 연극에 맞게 공연장을 꾸몄다. 6층 건물 한 채가 통째로 공연장으로 구성해, 100개의 방에서 일정한 동선에 따라 연기가 펼쳐진다. 관객은 하얀 가면을 쓰고 객실을 돌며 공연을 관람해야 하며, 일체 말을 하거나 배우의 동작에 불편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기존 연극이 정해진 공간에 앉아 배우들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 수동적인 관극 방식이었다면, '슬립 노 모어'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배우와 관객이 펼치는 무언극으로 공연장을 누비고 다니며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건축은 무언극이 펼쳐지는 무대와 같다. 건축에서 공간은 단순히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움직임을 연출하는 연극의 한 장면이다. 사람들은 건물 안에서 연기자가 되고, 건축가는 그들의 몸짓을 받아 적는 연출가가 된다. 비어있는 공간은 우리를 맞이하며 동선과 시선으로 움직이게 하고, 특정한 몸짓을 유도한다. 마치 무언극의 배우처럼, 건축은 한 걸음 높아진 계단, 좁아졌다 넓어지는 복도, 갑작스레 열리는 방안으로 방문자를 안내하며 공간 속 감정에 몰입시킨다. 건축의 진정한 가치는 침묵에 내재된 삶과 사용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빛난다. 공간이 지닌 물리적 사용성은 단순히 기능을 넘어, 그 안에서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펼쳐지고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지 담고 있다. 의도된 동선과 비워진 공간, 그리고 조심스럽게 배치된 빛과 재료는 우리가 건물 안에서 보내는 삶의 매 순간을 연출하는 섬세한 '삶의 무대'가 된다. 좋은 건축은 마치 능숙한 무언극의 공간처럼,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공간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살아 숨 쉬도록 이끌어 준다.무언극과 같이 건축은 침묵한다. 대사가 없는 침묵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건축에서 비어 있는 공간은 빛과 그림자, 바람과 소리를 불러들인다. 이 여백은 관객인 사용자가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이자, 창작자인 건축가가 남겨둔 가장 긴장되고 섬세한 호흡이다.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를 넘어, 존재의 깊이를 더한다. 건축이 건네는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공간이 품은 빛과 바람, 질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거대한 구조물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 바람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속삭임, 맨발로 닿는 차가운 돌의 감촉. 이 모든 비언어적 요소들은 사용자에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건네고, 각자의 삶을 투영할 여백을 제공한다. 공간은 그렇게 침묵하며 우리의 사색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캔버스가 되고, 우리의 몸짓과 동선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프랑스의 위대한 마임 배우 마르셀 마르소(Marcel Marceau)가 발레와 같은 우아함과 세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단순함 속에 담긴 깊이 있는 표현력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듯, 루이스 칸(Louis Kahn)의 킴벨 미술관은 텍사스의 강렬한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여 빛과 복도의 방향성을 통해 방문자의 시선을 단계적으로 이끈다. 이처럼 예술과 건축 모두에서 비움은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무언극에서 침묵과 정지가 관객의 해석을 유도하는 여백이 되듯,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물의 절에서는 콘크리트 벽과 연못 사이의 빈 공간이 빛과 바람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무언극의 한 동작이 끝난 후 찾아오는 정적과도 같은 고요한 몰입을 선사한다. 이와 같이, 건축에서도 비워둔 공간, 시야가 열리는 부분, 불필요한 물질적 채움을 걷어낸 면은 사용자 경험의 ‘숨 쉴 틈’을 만들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결국 무언극과 건축은 모두 비움과 침묵 속에서 진정한 의미와 풍요로움을 이끌어낸다. 이어령 선생이 ‘무언극, 그것은 침묵으로 이륙된 음악이다’라고 정의했듯이, 건축 또한 ‘여백으로 이륙된 완성’이라 할 수 있다. 무언극이 침묵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을 고조시키듯, 건축 또한 의도된 여백과 비움을 통해 사용자에게 깊은 체험과 울림을 선사하며, 그렇게 공간의 진정한 완성을 이룬다. 이처럼 침묵은 건축에 우리의 가장 깊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The McKittrick Hotel]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