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공간에서 장소로, 이야기를 짓는 공공 건축 Space 2024-08-01 Keywords 강혜빈 강혜빈에디터 장소 공간 공공건축 노원구청 리모델링 동네 지역사회 북카페 휴게공간 낯선 동네와 친해지고 싶을 땐 그 지역에 자리한 공간이나 장소를 가본다. 역 근처에 위치해 항상 북적이는 대형 카페나 조용하게 머물다 가는 독립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머무는 이유를 헤아려보며 그곳에 잠시 동화되기도 한다. 카페와 영화관은 개인에게 공간일까, 장소일까? 이 둘의 의미를 비슷하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엄연하게 구분 짓는 건축 학계의 입장도 있다. 공간에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었을 때, 그곳은 장소가 된다는 후자의 의견에 공감하는 편이다.공간과 장소를 이해함에 있어 행정기관을 담당하는 공공건축물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구청 건물의 로비는 그야말로 공간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과거 경험을 떠올려보아도 민원 업무를 보기 위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로비는 민원 창구를 향해 거쳐가는 연결통로일 뿐이었다. 몇 개의 의자와 홍보용 전시대 같은 설치물들이 있었지만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사람과 시간이 오래 머물지 못하니 그저 빈 공간과 다름없었다. 두 달 전 더위를 식히고자 잠시 들렀던 노원 청사 로비 공간은 요즘 공부하거나 책을 읽기 위한 장소로 자주 방문하고 있다. 청사 1층 로비는 2년 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지역사회의 라운지를 담당하는 장소가 되었다. 출입문을 지나 펼쳐진 넓은 공간은 답답한 벽 하나 없이 탁 트였고, 로비 중앙의 식물 정원은 자연스럽게 휴식과 업무 공간을 구분하고 있었다. 창가 쪽 놀이공간은 거실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확장감을 주었다. 놀이공간을 부드럽게 둘러싼 원형 테이블은 아이와 어른이 편하게 시선을 주고받을 수 있는 높이로 제작되었다.출입문을 기준으로 오른편에 위치한 계단을 올라가면 ‘공중평상’이라는 작은 휴게 공간이 있다. 벽면 책장에는 다양한 장르의 LP가 있어 편안한 1인 소파에 앉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헤드셋을 쓰고 턴테이블의 파이프를 내리는 순간, 평일 낮부터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소음은 어느새 잠잠해졌다. 그리고 명상하듯 현재의 순간에 잠시 집중해 보았다. 계단을 올라야만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은 오랜 목조주택의 다락방과 꼭 닮았다. 1층으로 내려와 로비 전체를 둘러싼 책장에 시선을 빼앗겨 로비 뒤쪽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사람 키 높이만큼의 책장은 로비에서 외부로 향하는 통로와 북카페의 휴게 공간을 구분하고 있었다. 청사의 로비가 ‘노원책상’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테이블과 오래 머물러도 편안한 벤치와 의자는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무더위가 끝나면 시원한 통창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러 더 많은 아이와 어른이 장소를 채우고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낼 것이다.노원 지역 이름은 갈대가 무성했던 과거의 모습에서 유래했다. 이곳에 역원이 설치되면서 교통과 숙박의 편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고 지역의 역할은 점차 확장되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노원구청사의 가로로 긴 투명한 유리창은 마치 건물 안팎의 그림을 멋지게 발산하는 도시의 액자 같다. 과거 넓은 평야를 자유롭게 뛰노는 말과 갈대숲이 만들었던 풍경처럼 현대의 노원은 사람이 모여 장소를 이룬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로비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본 밖의 모습은 생동하며 변화하는 도시를 비춘다.시간을 들여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수고로움이 따르지만 도시 일상의 크고 작은 장소를 하나씩 발견하며 나와 공간의 상호작용을 높이는 만족감을 준다. 6개월 차 초보 동네 주민이지만 기분에 따라 찾는 음악이 다르듯 나만의 장소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꽤 매력적인 취미다. 소중한 사람과 자주 방문하고 싶은 빵집, 특별한 추억을 선물할 그릇가게, 중요한 사람과 약속이 있을 때 꼭 방문하는 미용실 같은 일상의 작은 장소들이 쌓여갈수록 내가 머물고 있는 도시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된다.에디터 강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