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실종 안내, 우리는 건축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Opinion 2026-03-06 Keywords 실종안내 건축을기억하는방식 스마트폰알림 무관심 철거 충정아파트 건축의실종 무관심이만드는실종 도시 기억저장소 시간과기억이새겨진공간 기억요청알림 멈춰바라보기 존재와실종 작은시선의힘 도시의생기 삶의출발점 이상화에디터 하루에도 수차례 스마트폰이 울린다. ‘실종자 안내’로 시작하는 알림은 너무 익숙해져, 끝까지 읽지 못한 채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키와 옷차림, 마지막 목격 장소가 몇 줄 정보로 압축되어 도착하지만, 또 다른 알림에 가려 금세 잊힌다. 그 내용을 기억하며 길을 걷는 이는 얼마나 될까. 나 또한 어느새 무관심에 잠식되어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건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실종자 안내’처럼 우리의 시선과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이런 알림을 받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할까.[실종 안내] 동안구 소재 ○○빌딩(57세). 197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 3층 건물, 손끝으로 다듬어진 화강석 계단, 처마 밑 베니아 합판 마감, 곳곳에 덧칠된 희미한 흰 페인트. 2026년 3월 말 철거 예정.이 문자를 본다면 우리는 잠시 멈춰 고개를 들어 그 건물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저 건물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닳은 계단 모서리에는 수많은 발걸음이 녹아 있겠지.”라고.몇 해 전, 철거가 결정된 충정아파트를 찾은 적이 있다. 책과 기사로만 접해온 건물은 생각보다 훨씬 낡아 있었고, 힘을 잃은 채 시간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다. 군데군데 벗겨진 초록색 페인트 아래로 드러난 하얀 벽돌은, 한때의 위상을 조용히 증언하는 듯했다. 최초의 아파트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건물과 주민 모두 지친 모습이었다. 출입구에는 외부인 출입 금지와 사진 촬영 시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고, 날카로운 시선들이 공간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 대신 눈으로 그 순간을 담기로 했다.천천히 바라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풍경이 서서히 눈앞에 펼쳐졌다. 건물이 반으로 잘린 자리가 바로 정면 출입구였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았다. 과거 로비와 계단이 있던 공간은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허술하게 메워진 콘크리트 벽이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나는 그 일률적인 벽을 모던함으로 착각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할머니의 조심스러운 당부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뒤로한 채,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중정을 내려다보다 돌아서려던 그 순간, 열린 현관문 틈 사이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의 단호함과는 달리, 한없이 맑고 온화한 음성이었다.“들어왔으니 사진은 찍지 말고 눈으로만 봐 주세요.”그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배려였고, 덕분에 나는 이곳을 건물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파트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스한 온기로 내 마음속에 남았다. 할머니의 미소가 그 건축에 마지막 숨결과 온기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건축이 진짜 ‘실종’되는 순간은 단순한 철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잃어갈 때일지도 모른다고.도시는 거대한 기억의 저장소와 같다. 사라져간 이들의 이야기가 벽에 서려 있고, 떠난 가게의 흔적은 낡은 간판과 안내문에 쌓여 있다. 우리는 그런 공간들을 스쳐 지나며, 오직 새로운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반응한다. 오래된 건물들은 ‘위험’, ‘노후’, ‘비효율’이라는 꼬리표로 치환되며, 그 안에 쌓인 시간과 기억은 무심히 지나친다. 그러나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누군가의 첫 월급으로 구입한 가구가 놓였던 방, 아이와 함께 자라던 창가의 책상, 비가 내리던 날 잠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던 순간들. 이 모든 시간과 기억은 벽과 계단, 창틀 어딘가에 고스란히 새겨져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쉰다.상상해본다. 어느 날 이런 문자가 도착하는 장면을.[기억 요청] 오늘, 무심코 지나친 건물을 다시 한 번 바라봐 주세요. 그 건물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당신의 시선 속에서 서서히 스러져가고 있을 뿐입니다. 잠시 멈춰 고요히 바라보는 그 순간, 잊힌 시간들이 다시 천천히 깨어날 것입니다.건축은 도망치지도, 소리치지도 않는다. 조용히 시간을 견딜 뿐. 그러나 기억에서 사라지는 순간, 건축은 실종 상태가 된다. 물리적으로 존재해도 관계 속에서는 지워진 존재가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기억하며 오늘 하루, 한 건물을 다시 바라보는 것. 그 작은 시선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건축은 도망치지도, 소리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시간을 견디며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지킨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 건축은 실종 상태에 이른다.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서 있지만, 기억과 관계 속에서는 지워진 존재가 된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건축을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오늘 하루, 기억하며 한 건물을 다시 바라보는 그 작은 시선이 모여 도시의 숨결이 되고,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에디터 이상화